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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부지런히 정진하라"
작성자 관리자 작성일 2002-01-10 조회수 6227
"부지런히 정진하라"

  혜암당 성관대종사가 열반에 든날 삼라만상은 그 즐거움에 춤을 췄다. 하늘에서는 천둥번개가 거친 사자후로 화답을 하고 땅위로는 온 산하대지를 덮혀주는 서설(瑞雪)이 내렸다. 천둥번개와 같은 질풍노도의 선풍 50년 장좌불와와 두타행으로 전 불자들의 추앙을 받던 혜암당 성관 대종사는 삼라만상과 함께 즐겁게 춤을 추며 본래모습으로 돌아 간 것이다.

혜암종정예하는 1946년 가야산 해인사로 출가한 후 평생토록 눕지 않고 정진하는 장좌불와( 長坐不臥)와 하루에 한끼만 먹는 일일일식( 一日一食)을 하며 참선수행 에 몰두해온 한국불교의 대표적인 선승이었다. 그런 선승이 마침내 사바세계의 중생들만 남겨놓고 홀연히 떠나간것이다.

1920년 전남 장성에서 태어난 스님은 17세에 일본으로 유학하여 구약과 신약, 유교의 사서삼경, 불교의 조사어록등을 두루 섭렵하며 동양철학을 공부했다. 그러던 어느날 〈선관책진 (禪關策進)〉을 탐독하다가 크게 발심 출가를 결심했다. 해방이 되자 즉시 귀국한 스님은 1946년(27세) 초여름 가야산 해인사로 입산출가를 결행했다.

행자로 공양주를 하던 초가을 무렵 가야총림 조실인 효봉스님에게 '무(無)'자 화두를 결택받는 기연을 만났다. 그러던 어느 날, 밥을 푸다가 대분심(大憤心)이 일어난 스님은 소임을 다른 스님에게 부탁하고 백련암 뒷편 환적대로 올라갔다.

환적스님이 공부했다는 환적굴은 찾지 못했으나 다른 바위굴에서 "일주일 안에 도( 道)를 깨치지 못하면 죽어도 좋다"는 결연한 각오로 물 한 모금 마시지 않고 장좌 불와하며 일주일동안 단식용맹정진을 했다. 그러나, 끝내 道를 깨치지 못하고 해인사로 내려왔다.

그런일이 있은후 어느날 우연히 해인사에 들른 서옹스님이 행자였던 스님의 이야기를 듣고 퇴설당에 주석하고 있던 인곡스님을 친견케 했다. 인곡스님이 용맹정진을 하고 있다는 행자를 보자 대뜸 물었다.
"어디서 왔느냐?"
행자는 "아 악" 하고 일갈 하였다.
"네 고향이 어디냐?"
행자는 손바닥으로 방바닥을 힘껏 내리쳤다.
인곡스님이 틈을 놓치지 않고 재차 물었다. "네 이름이 무엇이냐?"
행자는 즉시 손가락으로 허공에다 일원상(一圓相)을 그렸다. 인곡스님은 다시 말했다.
"우리집 소가 여물을 먹었는데 이웃집 말이 배탈이 났다. 천하의 명의를 불러서 말의 병을 고쳐달라고 했더니 아랫집 돼지의 넓적다리에 뜸을 떴다. 이 이치를 알겠느냐?"
행자가 다시 주먹을 앞으로 불쑥 내밀었다. 그 모양을 물끄러미 바라보던 당대의 대선객 인곡스님이 빙그레 웃더니 행자의 머리를 만졌다. 그 이름없는 행자를 상좌로 받아들인 것이다.

혜암스님은 그해 10월 15일(음) 인곡스님을 은사로 효봉스님을 계사로 사미계를 수지한후 성관(性觀)이라는 법명으로 득도하였다. 스님은 가야 총림의 퇴설당선원에서 효봉스님을 모시고 동안거를 마쳤다. 가야총림 개설직후 첫 안거이자 혜암스님의 수계이후 수선안거(首先安居)였다.

1947년(28세) 봄, 첫 안거를 마친 스님은 곧바로 오대산 상원사서 한암스님을 모시고 봄 안거를 지냈는데 소임은 종두(鐘頭)였다.

어느날 새벽, 화두일념(話頭一念)에 들어 종성(鐘聲)을 하였으나 종이 제대로 쳐지지 아니하였다. 이때 종소리를 묵묵히 듣고 계시던 한암스님께서는 "저 수좌가 참으로 공부하는 납자(衲子)다" 하면서 크게 기뻐했다. 상원사에서 봄 안거를 마친 스님은 가야총림으로 발길을 돌려 해인사 퇴설당 선원에서 효봉 인곡 우봉 청담 비룡 범룡 학근 구산스님등과 함께 하안거를 지냈다.

47년 가을 혜암스님은 해인사에서 성철, 우봉스님과 함께 봉암사로 향했다. 그곳에서 자운 보문 도우 보근 일도스님등 290여명의 납자와 함게 "부처님 법대로 살자"는 '봉암사 결사'를 시작했다.

혜암스님을 비롯한 결사대중은 '일일부작 (一日不作)' '일일불식 (一日不食)'의 백장청규에 따라 자급자족 원칙을 삼았다. 모든 대중이 하루에 땔 나무를 두짐씩 하였으며 직접 경작을 했을뿐만 아니라 탁발도 했다

1951년(32세) 초봄 인곡스님이 스님의 공부를 점검했다. 그리고 혜암당( 慧庵堂)이라는 법호와 함께 게송을 내렸다.
只此一段事를 (다만 이 한가지 일을)
古今傳與授하니 (고금에 전해주니)
無頭亦無尾하되 (머리도 꼬리도 없으되)
分身千百億이니라 (천백억 화신으로 나투느니라)

51년, 범어사 겨울 안거 때의 일이다. 운허스님이 보제루에서 능엄경법회를 열었다. 법회시간에는 학인뿐만 아니라 선원 대중도 모두 참석하였으나 혜암스님은 일일일식 一日一食) 장좌불와 (長坐不臥) 묵언(默言)을 하며 오직 면벽정진만 했다. 그런 스님을 눈여겨 봤던 동산스님이 해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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